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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 모음] 안도현, 연날리기

by 장하아 202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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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날리기

 

안도현

 

우리 거친 엉덩이 하늘에 대고

살아온 한 해 돌아다보니. 그래도

섭섭한대로 괜찮았다 괜찮았다 싶은 것은

아침 해바라기 얼굴로 이 언덕에 모두 모여

사시사철 한숨 날리던 벌판 위로

오늘은. 연을 띄우고 있으므로.

삽과 괭이는 겨울잠을 자게 두고

우리는. 햇볕 잘 스며드는 전주 한지에 

추어서 푸른 대나무. 갈라. 다듬어. 붙여

힘센 바람의 성깔 아는 명주실에. 유리풀 먹여

새로 찧은 쌀가마니를 빈 곳간에 져다 부리듯

공중으로. 들창만한 방패연을 냅다 던지면

어느새 얼레 잡은 손목에 불끈 솟는 힘줄이여. 

저것 좀 봐. 강 건너 소나무 야산이

덩실덩실 어깨춤 추는 것을.

잠자는 줄 알았던. 얼음장 밑 물소리도

두런두런 연줄 따라 감겨 오는 것을.

하늘은 또. 몇 광주리씩 바람을 퍼올리는 것을.

누가 알 것이냐. 그 자랑스런 우리들의 노동과 

수만의 땅을 물고 가는 강물의 어깨를. 

기왕이면 땅을 물고 가는 강물의 어깨를.

기왕이면 태극무늬도 하나 그려 줄 걸.

꼬리연 조개연을 들고 까부는 어린것들

귓뿌리도 벌써 빨갛게 물이 들어. 

없는 것이 많아도 이리 팽팽한

사랑. 나눌 줄이야.

대낮의 불꽃놀이 같은.

이승과 저승 사이 다리를 놓는.

아직은, 사는대로 살아갈 만한 우리 만사를

누가 알 것이냐. 

『서울로 가는 全琫準』,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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