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시 모음] 이병률, 겹

by 장하아 2024. 4. 14.
728x90
반응형

 

이병률

 

나에겐 쉰이 넘은 형이 하나 있다

그가 사촌인지 육촌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모른다

 

태백 어디쯤에서, 봉화 어디쯤에서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돈으 ㄹ부치라고 하면 나에게 돌아오지도 않을 형에게

삼만원도 부치고 오만원도 부친다

 

돌아와서도 나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는 형에게 

또 아주 먼 곳에서 돈이 떨어졌다며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나는 그가 관계인지 높이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잘 모른다

 

단지 그가 더 멀리 먼 곳으로 갔으면 하고 바랄 뿐

그래서 오만원을 부치라 하면 부치고

십만원을 부치라 하면 부치며

그의 갈라진 말소리에 대답하고 싶은 것이다

 

그가 어느 먼 바닷가에서 행려병자 되어 있다고

누군가 연락해왔을 땐 그의 낡은 지갑 속에

내 전화번호 적힌 오래된 종이가 있더라는 것

종이 뒤에는 내게서 받은 돈과 날짜 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더라는 것

 

어수룩하게 그를 데리러 가는 나는 도착하지도 않아

그에게 종아리이거나 두툼한 옷이거나

그도 아니면 겹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할 뿐

어디 더 더 먼 곳에서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했으면 하고

자꾸 바라고 또 바랄 뿐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