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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 모음] 장정일, 지하인간

by 장하아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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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인간

 

장정일

 

내 이름은 스물 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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