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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좀 가져다주어요
허수경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은 청동으로 된 시간, 차가운 시간 속에 저렇게 뜨겁게 자라는 군인들, 아이들이 앉아 있는 땅 속에서 감자는 아직 감자의 시간을 사네 다행이군요, 땅 속에서 땅사과가 아직도 열리는 것은 아이들이 쪼그리고 앉아 땀을 역청처럼 흘리네
물 좀 가져다주어요 물은 별보다 멀리 있으므로 별보다 먼 곳에 도달해서 물을 마시기에는 아이들의 다리는 아직 작아요 언젠가 군인이 될 아이들은 스무 해 정도만 살 수 있는 고대인이지요, 옥수수를 심을 걸 그랬어요 그랬더라면 아이들이 그 잎 아래로 절 숨길 수 있을 것을 아이들을 잡아먹느라 매일매일 부지런한 태양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을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는 저 푸른 마스크를 쓴 이는 누구의 어머니인가, 저 어머니들의 얼굴에 찍혀 있는 청동의 총, 저 아이를 끌고 가는 피곤한 얼굴의 사람들은 아이들의 어머니인가 원숭이 고기를 끓여 아이에게 주는 푸른 마스크를 쓴 어머니에게 제발 아이들의 안부 좀 전해주어요 아이들이 자라는 그 청동의 시간도, 그 뜨거운 군인이 될 시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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