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서정주
오게.
아직도(이제 곧 겨울이 오는 것을 인지)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마당이 비어짐, 가을) 푸르고도 여린 서정주의 전통적인 농경의식이 드러남.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보편성에서 뛰어넘는 부분.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이제 비어간다고 생각하겠지만, 푸르고도 여린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이다.
오게.
저속에 항거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고단함이 주름을 만들었는데 그 주름은 저속에 항거하기 위해 생긴 것. 자네=1연의 '오히려 사랑할 줄 아는 이'. 너무나 많은 것을 겪은 자에게 위로의 말을 하는 것. 그 힘듦의 흔적(=주름살)을 없애지 말고 그대로 데리고 있으라 말함.
기러기 앞서서 떠나가야 할,
설게도 빛나는 외로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높고’ 구절처럼) 안항-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새가 날 때 맨 처음으로 공기 저항을 받는 게 이마와 가슴. 엄청난 각오를 다져야 한다는 뜻. 그 각오는 서럽기만 한 게 아니라 빛남.
가을 안항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푸른색은 추운 색. 여린 문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춥고 험난함. 거기로 갈 때가 지금.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꽃 -국화꽃이 있던 자리, 국화: 가을 꽃, 서리가 내려도 죽지 않음. 강한 식물.
올해 또 새 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자네-힘든 삶을 살아온 사람. 설게도 빛나는 외로운 길을 가야하는데 네가 주저앉으면 어떡하니. 저 꽃도 너를 달래주려고 하는 거야.
백로(절기)는 상강(절기)으로 우릴 내리 모네. 가을이 깊어지고 점점 추워짐
오게.
지금은 가다듬어진 구름. 청자는 주름살 많은 사람이다. 인생으로 봤을 때 가을 쯤일지도. 그만큼 성숙하고 마음의 깊이를 갖고 있음. 청자의 마음 속 구름 얘기하는 것.
헤메고 뒹굴다가 가다듬어진 구름은
이제는 양귀비의 피비린내 나는 사연(현종이 며느리를 아내로 삼으며 사랑으로 금기를 깼지만 결국 자기 손으로 양귀비를 죽인 이야기)으로는 우릴 가로막지 않고, 이런 사연은 겪을만큼 겪어왔으니 이런 것들은 우리를 가로막지 않는다.
휘영청한 개벽은 또 한번 뒷문으로부터
우릴 다지려
아침마다 그 서리 묻은 얼굴들을 추켜들 때일세. 국화는 서리가 내려도 지지 않음. 시름과 고통을 다 가다듬어낸 성숙된 그 사람은 개벽(문이 열림)에도 겁내지 말고 서리를 묻혀가면서도 빳빳하게 얼굴을 추켜들어야 한다. 그러니 낙망하고 괴로워하지 마라.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문-'휘영청한 개벽' 때 열린 문. 문들이 열리는 이 가을에 우리는 이 모든 걸 해왔으니 이 문들이 열렸을 때 서리 묻은 얼굴을 당당하게 추켜올릴 수 있다.
핵심
가을과 관련된 시. 가을에는 외로워지고, 외로워지고 싶은 욕망이 든다. 서정주는 그런 가을의 서정을 가져오면서도 마냥 그렇게만 시를 쓰지 않았다. 보편적인 소재를 가져와서 남들과 다른 걸 보여줬다.
보통 가을에는 뭔가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서정주는 가을에 느껴지는 정서를 받아오면서도 여기서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우리 정도 되면 저 문을 열고 서리 묻은 얼굴을 치켜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함. 일반적으로 다른 시인이 보여줬던 센티멘탈한 가을 시와 다르다. 가을 시의 맛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다른 시와 다른 깊이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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