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시 모음] 정현종, 낮술

by 장하아 2024. 4. 14.
728x90
반응형

낮술

 

정현종

 

하루여, 그대 시간의 작은 그릇이

아무리 일들로 가득차 덜그럭거린다 해도

신성한 시간이여, 그대는 가혹하다

우리는 그대의 빈 그릇

무엇으로든지 채워야 하느니,

우리가 죽음으로 그대를 배부르게 할 때까지

죽음이 혹은 그대를 더 배고프게 할 때까지

신성한 시간이여

간지럽고 육중한 그대의 손길.

나는 오늘 낮의 고비를 넘어가다가

낮술 마신 그 이쁜 녀석을 보았다

거울인 내 얼굴에 비친 그대 시간의 얼굴

시간이여,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그대,

낮의 꼭대기에 있는 태양처럼

비로소 낮의 꼭대기에 올라가 붉고 뜨겁게

취해서 나부끼는 그대의 얼굴은

오오 내 가슴을 메어지게 했고

내 골수의 모든 마디들을 시큰하게 했다.

낮술로 붉어진

아, 새로 칠한 뺑끼처럼 빛나는 얼굴,

밤에는 깊은 꿈을 꾸고

낮에는 빨리 취하는 낮술을 마시리라

그대,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리

 

 

 

 

정현종의 다른 시 >>

2024.04.13 - [시] - [시 모음] 정현종, 간단한 부탁

 

[시 모음] 정현종, 간단한 부탁

간단한 부탁 정현종 지구의 한쪽에서 그에 대한 어떤 수식어도 즉시 미사일로 파괴되고 그 어떤 형용사도 즉시 피투성이가 되며 그 어떤 동사도 즉시 참혹하게 정지하는 전쟁을 하고 있을 때,

millionairerich.tistory.com

 

2024.04.13 - [시] - [시 모음] 정현종, 그 여자의 울음은 내 귀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울음의 왕국에 있다

 

[시 모음] 정현종, 그 여자의 울음은 내 귀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울음의 왕국에 있다

그 여자의 울음은 내 귀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울음의 왕국에 있다 정현종 나는 그 여자가 혼자 있을 때도 울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혼자 있을 때 그 여자의 울음을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

millionairerich.tistory.com

2024.04.13 - [시] - [시 모음] 정현종,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시 모음] 정현종,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정현종 그래 살아 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 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 올라야지 곧 움

millionairerich.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