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09 [시 모음] 이병률, 겹 겹 이병률 나에겐 쉰이 넘은 형이 하나 있다 그가 사촌인지 육촌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모른다 태백 어디쯤에서, 봉화 어디쯤에서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돈으 ㄹ부치라고 하면 나에게 돌아오지도 않을 형에게 삼만원도 부치고 오만원도 부친다 돌아와서도 나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는 형에게 또 아주 먼 곳에서 돈이 떨어졌다며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나는 그가 관계인지 높이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잘 모른다 단지 그가 더 멀리 먼 곳으로 갔으면 하고 바랄 뿐 그래서 오만원을 부치라 하면 부치고 십만원을 부치라 하면 부치며 그의 갈라진 말소리에 대답하고 싶은 것이다 그가 어느 먼 바닷가에서 행려병자 되어 있다고 누군가 연락해왔을 땐 그의 낡은 지갑 속에 내 전화번호 적힌 오래된 종이가 있더라.. 2024. 4. 14. [시 모음] 허수경, 물 좀 가져다주어요 물 좀 가져다주어요 허수경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은 청동으로 된 시간, 차가운 시간 속에 저렇게 뜨겁게 자라는 군인들, 아이들이 앉아 있는 땅 속에서 감자는 아직 감자의 시간을 사네 다행이군요, 땅 속에서 땅사과가 아직도 열리는 것은 아이들이 쪼그리고 앉아 땀을 역청처럼 흘리네 물 좀 가져다주어요 물은 별보다 멀리 있으므로 별보다 먼 곳에 도달해서 물을 마시기에는 아이들의 다리는 아직 작아요 언젠가 군인이 될 아이들은 스무 해 정도만 살 수 있는 고대인이지요, 옥수수를 심을 걸 그랬어요 그랬더라면 아이들이 그 잎 아래로 절 숨길 수 있을 것을 아이들을 잡아먹느라 매일매일 부지런한 태양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을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는 저 푸른 마스크를 쓴 이는 누구의 어머니인가, 저 어머니들의 얼굴에 찍혀 있.. 2024. 4. 14. [시 모음] 허수경, 정든 병 정든 병 허수경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위독한 길을 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등불의 세상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혼자 가는 먼집』, 문학과지성사 2024. 4. 14. [시 모음] 최승자, 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 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 최승자 담배 한 대 피우며 한 십 년이 흘렀다 그동안 흐른 것은 대서양도 아니었고 태평양도 아니었다 다만 십 년이라는 시간 속을 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 새 한 마리가 폴짝 건너뛰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미래의 시간들은 銀(은)가루처럼 쏟아져 내린다) 최승자의 다른 시 >> 2024.04.14 - [시] - [시 모음]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시 모음]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개 같은 가을이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 millionairerich.tistory.com 2024. 4. 14.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28 다음 반응형